[와인 이야기 2] 단색화 거장 이우환, 샤토 무통 로칠드에 붓을 잡다

와인 이야기 2: 이우환 그리고 신의 물방울

에디터 소더BEE 승인 2024.08.25 17:40 | 최종 수정 2024.10.20 16:59 의견 0
샤또 무통 로칠드 2013

2023년 용산에 소재한 한 갤러리에서는 '샤또 무통 로칠드' 와인 라벨(와인병에 붙어 있는 상품 라벨)만 떼어내서 그걸 액자에 표구해 전시하고 판매하더군요. 호기심이 발동하여 와인 가격을 보니 빈티지별로 가격이 다르지만 2010년 이후 생산된 와인은 최소 1백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와인 한 병에 1백만 원을 넘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와인을 다 먹고 빈 병에 붙어 있는 라벨을 떼어내서 그걸 액자에 넣고 1백만 원도 넘는 가격에 파는 건 뭐지? 갸우뚱한 적이 있었죠. 세상은 알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하니 그냥 속으로 이상하다 생각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만일 샤또 무통 로칠드 와인을 먹는다면 그 빈 병은 절대 버리지 말고 소장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샤또 무통 로칠드 홈페이지 메인

참고로 샤또 무통 로칠드 와인(Château Mouton Rothschild)은 프랑스 보르도의 북서쪽에 위치한 메도크와 포이약 마을에 위치한 와이너리(양조장)로 세계 최고의 명성을 가진 와인이죠. 이 세계적인 와인은 매년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콜라보 라벨을 만드는데 그 시작은 2차 세계대전 종식 후부터입니다.

디자이너 장 카를뤼(Jean Carlu 1900~1997)의 디자인 라벨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한차례 아티스트 콜라보를 진행했으나 이는 엄밀히 말해 아티스트 콜라보이기보다는 상업 디자이너였던 장 카를뤼(Jean Carlu 1900~1997)의 디자인 라벨로 보는 게 적절합니다. 그가 디자인한 라벨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화살과 샤토 무통 로칠드만의 상징인 양이 적절하게 디자인된 라벨이었습니다. 올해로 딱 100년이 된 디자인이 재밌게 느껴집니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 와인은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협업하여 라벨을 제작하는데 특히, 우리나라 작가도 이 라벨을 그렸다는 사실. 그 작가는 현재 생존 작가 중 가장 유명한 작가이기도 한 이우환 작가입니다.

이우환 작가 - 출처: 이우환 인스타그램

이우환(Lee Ufan, b. 1936~)은 어린 시절 동초 황견용으로부터 붓글씨와 그림을 배웠고, 고교시절엔 미술교사였던 장두건과 서세옥 곁에서 폴 세잔(Paul Cezanne)과 팔대산인(八大山人) 등에 관심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1956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숙부의 권유로 일본에 남아 니혼대학교 철학과(1958~1961)를 졸업하게 되죠.

이후, 일본 모노하를 이끈 주역이 되며 우리나라 근현대 단색화 작가들과 교류하며 단색화 열풍을 일으킨 장본이기도 합니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생존 작가로 회화뿐 아니라 조각에서도 입지를 굳건히 세워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색감을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우환 작가의 2013년 빈티지 샤또 무통 로칠드의 작품은 와인의 색감을 담은 다이얼로그입니다. '연한 자줏빛이 짙어져서 마치 위대한 와인이 오크통 안에서 천천히 완성되어 가는 것과 같다.'라고 작가 자신이 설명합니다. 샤또 무통 로칠드 라벨에 들어가는 한국작가는 이우환 작가와 천경자 작가가 거론되었고 결국엔 이우환 작가가 선정되었습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이렇게 그림을 그려주면 작품값으로 샤토 무통 로칠드를 받는다고 하는데 아마 작품 가격 보다 세계적인 와인의 라벨에 그림을 그리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작가는 판단했을 것 같습니다. 혹시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 여행을 가서 이우환 작가의 라벨을 보게 된다면 우리나라 작가가 그린 라벨이야라고 한 번 이야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예술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 와인 라벨을 통해서도 알게 됩니다.

글: 소더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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